메인 바로가기 | 주메뉴 바로가기 | 본문 바로가기

전체뉴스 안녕하세요. 뉴스퍼블리카입니다.

홈 > 전체뉴스 > 전체뉴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7-17 12:55:31
제목 [역사 한 줌] 독립투사들은 난민이었다.
첨부파일 jpg 난민.jpg (335.78 Kb)
내용



[역사 한 줌]

 

독립투사들은 난민이었다.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예멘 난민 문제로 논란이다. 한국은 1993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기에 기본적으로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사회는 난민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난민 협약 탈퇴를 청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는 수구언론의 잘못된 정보 유통과 특정 종교집단의 조직적 반대 여론 확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난민문제에 대해 평소 크게 고민해보지 않은 생경함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현재 우리사회가 난민 문제에 인색한 모습은 어딘지 어색하다. 당장 대한민국임시정부만 놓고 보더라도 이름 그대로 일본제국주의의 정치적 탄압과 민족적 압박을 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도피하여 활동한 망명정부였지 않은가. 난민 협약에 의하면 난민이란 인종·종교·국적·특정사회집단에의 소속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이유 있는 공포 때문에 자국국적 밖에 있는 자 및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 때문에 자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바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지배력이 비치는 한반도를 떠나 중국 등 외국으로 이주한 한국민들 특히 독립투사들은 모두 난민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가승인 그리고 교전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적어도 고향을 떠나와 임시정부를 포함해 독립운동단체의 영향력 밖에 있었던 한국민들은 당시 중국인들 눈에는 영락없는 난민 신세였을 것이다.

 

1911년 서간도 유하현 추가가(邹家街 :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성촌)에서 시작한 신흥강습소(후에 신흥무관학교)의 설립 초기의 모습을 살펴보면 당시 독립투사들과 이주 한국민들이 어떤 처지였는지 생생히 할 수 있다.

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집단으로 추가가 마을로 몰려든 한국인 망명객들을 보고 놀란 당시 추가가의 한 주민은 조선인들이 떼 지어 몰려오니 필경 일본과 합하여 중국을 치러 온 것이 분명하다며 조선인들을 몰아내 달라”(이은숙의 회고)고 관서에 고발했다. 게다가 추씨들은 종회를 열어 한국인들에게 토지, 가옥 매매를 금지하고 한국인들이 집이나 학교를 짓는 것 역시 금지하였고 심지어 한국인들과의 교제도 금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군경들이 한국인 숙소를 급습해 조사하곤 했다. 독립운동을 위해 무관학교를 설립하겠다며 먼 망명길을 왔건만 땅은커녕 가옥조차 짓지 못하게 된 황망한 처지가 되었다. 이에 망명객들은 중국복장에 변발까지 해가면서 중국 국적 취득을 위해 노력하면서 이회영과 이봉희를 대표로 명시해 당시 중국 동북삼성 총독 조이풍에게 청원서를 보내 중국인으로 입적과 토지 매매를 간청했다.

 

우리들은 나라를 떠나 이주해 온 다시는 압록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맹세한 무리들입니다. 대개 저 원수놈(일본-필자 주)들과는 하늘을 이고 살 수는 없는 존재들입니다.”(청원서 중)

 

하지만 이마자도 허사로 돌아가자 이회영은 북경으로 가서 우여곡절 끝에 당시 중국 최고 실력자 위안 스카이와 담판하여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온다.

 

만주 원주민들은 이주하여 오는 한국인들과 친선을 도모하고 농업, 교육 등 한국인들의 사업 일체에 협조할 것이다. 서로간의 분쟁을 야기하거나 불화를 조성하는 일체의 언동을 절대 삼가할 것이며 만일 지시를 위반한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동북삼성 총독의 훈시문 중)

 

이로부터 신흥강습소는 신흥중학에서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여 무려 3,500여 명의 독립투사들을 양성했고 오늘 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인들의 관용이 낳은 엄청난 역사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1998년 월드컵 우승을 이끈 당시 프랑스 대표팀 지네딘 지단 선수가 알제리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년 만에 다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지금의 프랑스 대표팀 선수 23명 중 21명이 이민자라고 한다. 난민 문제에 마주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통일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다리와 관문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세에 의해서 지금처럼 전세계에 강제로 흩어져 디아스포라와 분단의 고통을 계속 당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통일을 지지한다면 좀 더 열린 사고와 진취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지금처럼 대륙에 연결된 섬 아닌 섬이요 자루 속에 갇힌 생쥐 처지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을 코리아(Korea)라고 세계에 처음 알린 이들도 당시 국제 무역이 성했던 고려를 왕래했던 아라비아 상인들이었다. 난민 문제를 남이 아닌 우리의 역사로, 현재가 아닌 미래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이다.


이사장 함세웅 02-969-0226